나는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쳐왔다.
다섯 살때 사과같은 내 얼굴이라는 동요를 부르는 아이를 티비에서 보고 집에 있던 엄마의 피아노로 쳐봤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음악학원에 데려갔다.
음악학원에 가는 길엔 참 개가 많았다.
어린 나는 개가 무서웠다. 사실 아직도 무섭다 ㅎㅎㅎ
그래서 몇달 다니던 학원은 결국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다시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나는 꽤 빨리 기초를 배웠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친 기억은 그다지 없다...
그렇게 그렇게 중학교 2학년때까지 건성으로 쳐가면서
한국 내의 콩쿨에도 몇개 일위는 아니지만 순위권에 들어 입상도 하고 그랬다.
그렇지만 우리집은 현실적으로 나를 예체능 쪽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줄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는 그냥 당연히 취미로 한정되었다.
물론 교회에서 반주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부터 쭉 했던거 같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홈스쿨을 했고
그래서 중학교 졸업 후 이년 뒤인 19살에(한국 나이로) 대학에 갔다.
입시준비를 하던 중, 작곡과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삼개월간 바짝 준비를 했고 원서를 쓸 때가 되었다.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난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뭔가 메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철학과를 갈까? 뭔가 있어보이잖아 ㅎㅎㅎ
나는 신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 둘러쌓여 신학만 공부하기에 자꾸 마음이 음악쪽으로 더 갔다.
2학년때부터 결국, 십대 중반부터 늘 좋아하고 존경해 온 이기선 지휘자님께 음악을 좀 배워보고자
다니던 학교의 지휘전공을 부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일년간 휴학을 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헤어살롱에서 좀 일을 하다가
3개월간 유럽을 여행했다. 그냥 여벌 옷 한벌 가지고서...
참 인생이라는 게 여행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학교로 돌아가서 마지막 두학기를 하면서
유럽으로 작곡을 공부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학업의 이유만은 아닌 부가적인 이유들로 나는 이탈리아의 음악원 준비를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준비할 당시의 굽립 음악원 학칙은 기악이나 성악 전공 디플로마가 없이 작곡 전공을 시작할 수 없어서
나는 또 피아노를 쳤다.
한 6개월간 두곡만 엄청 연습한거 같다.
6개월 후엔 쇼팽 혁명 에뛰드를 160 속도로 쳤던거 같다(지금은 못친다 ㅋㅋ)
이탈리아에 왔는데,
운명의 그를 만났다.
나는 그때 이놈저놈 다 만나보고, 아 결국 다 그게 그거야 하던 중이었는데
이 놈을 보니, 아 아니야, 이 놈이야. 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시험준비도 간간히 했었는데
뭐 이사하게 되거나 임신과 출산의 이유로 자꾸만 나의 학업계획은 미뤄졌다.
2012년 12월!
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 두번째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현재의 피아노 선생님이다.
나는 피아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한번도 피아노가 평생 나의 동반자가 될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지금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을 내가 어릴 때 만났더라면 난 그냥 쭉 피아노를 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선생님은 내 피아노를 손봐주는 테크니션의 여자친구다.
그 둘은 나의 피아니스트라는 정체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더이상 생각하지 않고 어느 순간, 지난 가을, 그러니까 2013년 11월에
나는 음악원 석사과정으로 바로 피아노 전공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연습을 너무 해서 두달만에 열손가락 끝에 모두 굳은살이 박혔다.
중간에 손목이 아파서 운동할때 쓰는 리스트밴드를 하고 연습한 적도 있고,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도 밴드를 붙이고 연습했다.
시험 곡도 하나하나 시기별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곡들로 정성껏 삼주에 걸쳐 밤낮을 고민하며 골랐었다.
내 입학 시험은 학부 전공이 피아노가 아니기 때문에 학사 졸업연주 수준에 준하는 1시간 리사이틀이었다.
그런데 나는 점점 가족 내에서 사라져가는 내 모습을 직면해야했다.
그래서 과감히 가족을 선택하기로 했다.
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까의 미련은 남지 않을거 같았다.
왜냐면 나는 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는 데까지 내가 갔었기 때문에
그냥 이룬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더 중요한 가족을 택한거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안보기로 결정하고 이틀이 지나자 세상이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ㅎㅎㅎ
결국 나의 정체성은 이제 피아니스트라는 부분이 큰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쉽게 떼어내 버릴 수가 없게 된거 같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열흘 정도간의 고심과 고뇌, 고민들 끝에
나는 다시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학위는 여전히 계획을 무한정 미루거나 계획이 없이, 그냥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너무나 좋아하는 슈만의 피아노 콘체르토 악보를 하나 샀다.
이 악보는 특별할 게 없지만, 내게 있어서는 평생,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은 피아니스트로 남겠다고 결심한 그 것을 늘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해 줄거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연주를 보고 왔는데
칠십 이세의 폴리니가 오랜 친구인 아바도의 죽음 이틀 후에 헌정한 장송행진곡..
쇼팽 소나타 2번의 3악장 연주시간 10분간은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삼일간 잠이 들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던 감고 있던 그 음악이 계속 들려왔다.
그 아름다움에 나의 심장이 조각조각 잘려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화려한 기교도 좋고, 기교를 자랑 할 수 있는 음표수가 엄청나게 많은 어려운 곡들도 좋지만
표현의 깊이에서 오는 감동은 기술로는 줄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이구나..
앞으로는 하다못해 체르니 연습곡 하나를 쳐도 다른 연습곡으로 바꾸기 전에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고 넘어가야겠다.
몇일 전에 체르니를 연습하고 있는데 옆에서 책을 보던 남편이
그게 대체 무슨 곡이야? 너무 좋다. 그랬다.
나는 그것으로 이미 내가 그리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나의 테크닉은 시간이 흐르며 더 발전될 것이고, 표현의 깊이도 풍부해 지겠지만
음악을 대하고 관중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변함이 없이 늘 한결같기를 다짐해 본다.
다이어트를 하는 데도 다 각자의 이유와 동기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왜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달라진다.
어떤 일이 되었든 의지가 따라 준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가령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벼락부자가 될 것만 바라며
위험한 배팅을 하기도 하고, 허황된 것들을 쫓기도 한다.(살빼기에도 그에 준하는 것들이 있다)
다이어트도, 아 내가 이 정도 사이즈면 따라올 어떤 부가적인 것들...그것들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나를 상품화 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혹은 내가 뚱뚱해서 받는 불이익에 대한 저항?
이런 것들이 나를 진정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으로
우리를 이끌어줄만한 동기는 되지 못한다.
나는 나의 동기를 안다.
이 글을 읽을 지구 저편의 누구라도 한번씩 생각해 보고..
내가 정말 다이어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기와 목적을 점검하고 나면 작심 삼일 후 조급해 지는 마음도,
남들을 그저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도 조금씩 흐려질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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