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스널트레이닝

행복한동행 - 좌충우돌 신입 시절

뉴로트레이너 강박사 2009. 12. 10. 09:47

나는 치열한 스포츠 현장에서 일하는 아나운서다. 입사한 지 3년차, 이젠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경기 규칙도 제대로 모르던 신입 시절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찔한 실수들의 연속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년 전, 축구장에 나가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수원삼성과 FC서울이 치열한 순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팽팽한 승부의 균형을 깨고 FC서울의 이청용 선수가 선제골을 넣었다. 승부의 추가 FC서울 쪽으로 넘어갔다고 판단되었던
후반 30분, 나는 FC서울의 귀네스 감독과 이청용 선수의 질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완성된 질문지를 들고 그라운드로 향하는 일만 남았는데, 아뿔싸, 경기장이 너무 커서 중계석에서 그라운드까지 내려가는 길을 못 찾았다. 미로 같은 경기장을 헤매고 있자니 속이 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기였기에 내가 그라운드에 도착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방송 사고가 난다. 경기 종료까지는 단 5분, 초침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잡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갔다.

 간신히 그라운드에 도착하니 경기를 끝낸 이청용 선수가 인터뷰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걸 보니 자신의 활약으로 팀이 이겨 감격에 겨운 모양이었다. 나는 이청용 선수의 기쁜 마음을 생생히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 경쾌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 팀을 승리로 이끈 이청용 선수 만나 보겠습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이청용 선수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는데 무승부가 돼서 너무 아쉽고요. 다음에
는 꼭 팬 여러분께 승리를 안겨 드리겠습니다.”이럴 수가! 내가 경기장 뒤편에서 헤매는 동안 동점골을 허용한 것이다. 결국 나는 경기도 안 보고 대충 인터뷰하는 아나운서로 낙인찍혀 한동안 축구 팬들의 호된 질책을 감내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내게는 경기장에 일찍 도착해 동선을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매일이 기쁘다고만 하면 거짓이겠지만, 나는 무한한 스포츠의 매력을 전달하는 이 일을 사랑한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지만, 오늘의 실수를 뛰어넘어 내일 한층 더 나아지길 꿈꾸며 열심히 스포츠 현장으로 종종걸음 친다.

김석류 님 | KBS N 스포츠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