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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에게“쥐뿔도 없으면서 오지랖만 넓다.”거나“정만 많다.”라는 핀잔을 가끔 듣습니다. 못난 얼굴처럼, 나누기 좋아하는 성격도 어쩌면 타고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대단한 것을 나누는 건 아닙니다. 소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죠.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시골 할머니들에게 가벼운 지팡이나, 홀로 맞는 긴긴 겨울밤에 드실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는 손도 부끄러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대가 없이 건네 본 경험이 없던 거지요. 그런데 삶이 한 겹씩 덧대어지자, 건네는 손은 물론이 고 받는 손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토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집배원 오토바이를 기다렸다 건네는 애호박 하나, 어미 닭의 온기가 남은 달걀 하나, 흙의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무 하나지만 나를 기다린 할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차마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것이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 드리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뙤약볕에서 고추 따는 할머니들의 땀방울이 마음 아프던 작년 여름 복날 이야기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삼 넣고 푹 곤 닭 한 마리씩 대접하고 싶은데, 형편이 못 돼 쭈쭈바를 잔뜩 사서 고추 밭을 찾아다녔습니다. 할머니들은“뭘라고 이런 걸….”하면서도 쭈쭈바를 받고 환하게 웃으며 땀을 훔쳐 내셨지요.
그런데 한 할머니가 쭈쭈바를 들고 당황해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흙의 고운 입자가 지문의 골마다 들어찬 손가락뿐 아니라 얼굴에도 난감한 빛이 역력했습니다. 등기우편물을 전달하고 서명을 요구했을 때, 차마 이름 석 자 쓸 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 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생 자식들 바라지하며 살았지만, 정작 당신은 50원 하던 쭈쭈바 한 번 입에 넣은 일이 없다는 것을. 따 드린 쭈쭈바를 입에 넣고야 펴지던 할머니의 얼굴은 다섯 살 난 내 아들과 똑같았습니다.
아직도 주위에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긴 겨울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오늘도 나보다 더 추운 사람들에게 달려갑니다. 아마 이 글의 원고료가 들어오는 날도, 까만 비닐봉지가 내 손에 들린 채 시골 할머니들을 향해 기쁘게 끌려 다니겠지요.
함성주 님 | 집배원
- 《좋은생각》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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