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스널트레이닝

아빠와 피아노

뉴로트레이너 강박사 2009. 8. 5. 08:48

저는 동생과 쌍둥이에요. 위로 두 살 터울의 오빠까지, 삼남매를 키우시느라 부모님 고생이 많으셨죠. 

 어릴 적부터 무엇을 하든 동생과 함께여야 했던 까닭에 부모님 지출이 컸습니다. 옷을 사도 두벌, 신발을 사도 두 켤레, 노트와 준비물 모두 두 배가 들었으니까요. 유치원을 다니려 해도, 속셈 학원을 하나 끊으려 해도 언제나 2인분의 지출이 요구됐죠.

 딸들의 사교육 때문에 엄마아빠는 종종 다투셨어요. 다른 아이들이 한두 개씩은 다니는 사설학원을 저희 자매라고 피해갈 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늘 형편에 맞는 씀씀이를 강조하시던 아버지는 학교 교육만 착실히 따라가도 뒤쳐지지 않는다며 사교육에 드는 비용을 달가워 않으셨고, 결국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마는 억척 엄마가 늘 아빠 몰래 돈을 융통해 저희를 학원에 보내시곤 했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쯤 됐을까요? 엄마는 저희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지출이 만만치 않았지요. 그래도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교회 집사님과의 친분을 적극 활용해 '둘이 묶어 한명' 가격의 특혜를 따내셨습니다. 

 재미나게 피아노를 배우던 어느 날, 저희가 몰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걸 아버지가 알고 말았습니다. 불같은 성미의 아버지는 노발대발 하시며 당신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 엄마를 나무라셨죠. 결국 아빠의 불호령에 동생과 저는 1년 반 동안 다니던 학원을 끊어야만 했습니다. 저희는 한동안 아빠 앞에서 웃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피아노 학원에 발을 끊은 지 3개월 쯤 됐을까요?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 보니 방에 떡 하니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겁니다. 아빠의 뜬금없는 선물이었죠. 비록 중고피아노였지만 그 만만찮은 값을 지불하기 위해 아빠가 치렀을 노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답니다. 

 비싼 학원비 들이지 말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하라는 뜻이었겠지만, 동생과 저의 피아노를 향한 열의는 그 뒤 금세 식어버려, 피아노 뚜껑 위엔 뽀얀 먼지가 쌓여만 갔습니다. 결국 자리만 차지한다는 생각에 수년 전 피아노를 되팔게 되었는데요, 중고 매매인이 후한 값을 쳐주며 그러더라고요. 꽤 좋은 제품이라 중고여도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는 거라고요. 

 아빠의 조금 특이한 자식 사랑 방식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언제나 감정 표현이 서툴러 성부터 내고 보는 분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고구마 속살처럼 무르고 달달한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동갑내기 둘을 한꺼번에 키워내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언제쯤 갑절로 갚아드릴 수 있을까요?   

글 《행복한동행》 김혜겅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