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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비가 온다. 온 땅이 마르는 게 아닐까 싶어 꽃 피고 화창한 날에도 걱정스럽던 날들. 고맙게도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덩달아 연 이틀 떨어지지 않던 열이 좀 내렸다. 열에 끙끙 앓으면서도 나는 계속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이 모여 사는 마을 둥게스와리. 80여 명의 대학생과 그곳 수자타아카데미 강당에서 지난겨울을 보냈다. 일주일째 되던 날, 물갈이를 하느라 나는 꼬박 하루를 침낭 속에서 끙끙 앓았다. 그래도 괴롭지 않았다. 옆에 몇몇 친구도 앓아 누워있었고, 아픈 친구들 몫까지 일했던(우린 그때 마을 길을 닦고 있었다) 친구들이 먼지 풀풀 날리며 다가와 손잡아 주고 머리 짚어 줄 때의 서늘한 감촉에 마음이 따듯했다. 내안에 친절과 상냥한 마음을 간절히 원하는 작은'아이'가 있음을 똑바로 보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외면하고 싶던 내 안의 덜 자란 아이….
이런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참 작았다. 키도 몸집도 내 반밖에 안 되는 엄마들이 다른 방법을 몰라 아이를 많게는 일곱씩 낳는다. 그리고 두 평 정도의 까만 흙집에 이 식구들이 다 같이 산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진 어느 날, 마을에 동사자가 생겼다. 쉽게 오염되는 우물 때문에 전염병이 돌고, 아이들은 한 살도 되기 전에 구걸을 먼저 배운다.
늘 나를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들던 마을 아이들의 노래 같은 말,“ 디지에(주세요).”돈을 주면 아이들의 구걸하는 습관이 더 굳어질 거라는 생각과, 주지 않자니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사이에서 나는 몸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아프고 난 뒤, 내 마음속의'아이'를 본 뒤, 나는 아이들을 자주 어루만졌다. 끌어안고 쓰다듬고 장난치고 먹을 게 있으면 나눠 먹었다. 아이들은 먹고 있는 걸 나눠 달라고 조르면 울상을 짓다가도 금세 깔깔 웃으며 반을 갈라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따뜻한 손길과 보드라운 마음을'구걸'하던 내 마음속의 아이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작은 아이들. 그 동글동글한 머리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루만졌다. 내 마음속의 아이도 행복해했다.
그렇게 나는 둥게스와리에서 나보다 열다섯 살쯤 어린 대학생들과 나보다 서른 살도 더 어린 아이들 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과 함께 웃던 내 안의 아이. 흔히 말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하나, 그곳에서 배우고 왔다.
김여진 님 | 영화배우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