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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퍼스널 트레이너BBMC, www.BBMC-PT.com, 퍼스널 트레이너 임종필 인터뷰

뉴로트레이너 강박사 2011. 3. 12. 19:13

 

 

“미스터 코리아를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어요”


 

배용준 사진집에 나온 몸매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배용준의 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는 바로 퍼스널 트레이너 JP 임종필씨다. 24시간 내내 배용준과 함께 하면서 식사조절과 운동조절을 통해 배용준의 몸을 만들었다. 그의 성공은 퍼스널 트레이너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만나봤다.

배용준 몸 만들기 책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배)용준이형과 작업을 같이 하면서 제가 그랬어요. ‘형은 배우 안 하고, 사업을 해도 성공하겠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근성이 대단하던데요. 나중에 용준이형 몸 보고 제가 다 놀랐으니까요.”

배용준의 몸을 만든 퍼스널 트레이너 JP 임종필(29)씨. 당시 배용준과의 트레이닝은 즐겁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욘사마의 사진집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이 고비였다. 배용준은 이소룡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몸을 원했고, 그는 그것을 이뤄줘야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했고, 배용준의 몸 상태도 매일 매일 체크했다. 배용준의 식생활을 관리해야 했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쉼 없이 땀방울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24시간 배용준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 얻은 정보를 묶어서 펴낸 책 「Bae Yong Joon 100 Days Diet Program」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출판됐고, 도서 분야에서 1위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지난 한 달간 책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지난 4월 20일 귀국했다.

일본에서도 그의 존재는 대단하다.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전무한 탓에 그의 출현이 신종 직업 하나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 오사카에서는 그를 ‘J사마’라는 별칭으로 불러줄 정도로 인기 있다.
“일본 팬들에게 용준이형 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비결과 몸을 잘 만드는 노하우, 그리고 좋은 식생활 습관 등을 알려주고 다녔어요. 일본 피트니스 협회에서 저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의도 받았어요. 아마도 일본 연예인을 트레이닝시킬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연예인이 한국으로 와야겠죠.(웃음)”

배용준 트레이너로 알려지기 전부터 임종필씨는 차인표, 권상우, 비 등 연예인들의 퍼스널 트레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나오기 전에는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기다. 임종필씨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또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은 배용준에게 포커스가 맞춰졌지만, 4월 말 한국에서 출판되는 「Design Your Body」는 일반인들을 위한 책이다. 책의 사이즈도 작게 제본이 돼 언제 어디서나 참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몸 만들기를 시도하는 초보자들을 위해서 책을 냈어요. 특히 여성들은 헬스기구 사용법을 몰라서 달리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영장에 가서 샤워만 하고 나오는 것과 같죠. 퍼스널 트레이너를 고용하려면 돈도 많이 드니까, 어쩔 수가 없죠. 그래서 이 책에는 기구 사용법 등 초보자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가 들어 있어요.”

특히 이 책에는 그동안 그에게 훈련받은 스타들의 몸매 만들기 노하우도 소개했다.

운동하면 ‘빌어 먹는다’는 아버지의 반대 이겨내


퍼스널 트레이너로 인정받기 위해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나왔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는 화장실 청소를 못 한다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짤린’ 경험도 있다. 대학 입학이 좌절되었을 때는, 운동에 회의를 느껴 ‘노가다’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돌아왔다. 운동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레슬링을 하려고 했어요. 집에서 어찌나 반대를 하던지, 그래서 1학년 마치고 가까운 피트니스 클럽에 회비 3만원을 내고 가입했죠. 피지컬 트레이닝을 해보니까 너무나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푹 빠지게 됐죠. 정직한 운동이라는 것도 느꼈구요. 요령을 피면 결과가 바로 나오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정말 잘나가는 선수였다. 1994년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 학생부에서 2위를 수상하고, 서울 시장배 학생부에서 1위를 할 정도였다. 전국에서 베스트 5에 속할 정도로 앞길이 창창한 선수였다. 하지만, 대학 입학이 여러 가지 문제로 꼬이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군에 가기 전까지는 막노동도 해보고, 서빙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피지컬 트레이닝에 뛰어들었다.

집에서는 운동을 한다는 소리에 펄쩍 뛰었다. 그의 아버지는 킥복싱, 유도 등 격투기 14단이었고, 용인대를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 ‘운동하면 빌어먹는다’며 극구 반대를 했지만,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는 피지컬 트레이닝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트레이너는 워낙 비인기 직업이었고,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비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연히 1년간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을 파는 영업을 하면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좀더 큰 곳에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 2002년도에 강남에서 가장 큰 피트니스 센터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센터.
 “그곳이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해준 곳이죠.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냈는데, 남들이 빽빽하게 써내려간 경력에 비해 전 달랑 두 줄이었죠. 그래도 마음이 통했는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입사 1개월 만에 베스트 트레이너로 꼽힐 정도였다. 마침 몸짱 만들기 열풍이 불면서 많은 연예인들을 그곳에서 만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낸 보람이 생긴 것. 지금 아버지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열렬히 서포트 해주고 있다며 웃는다.
당분간 퍼스널 트레이너로 바빠질 예정이다. 바로 드라마 ‘태왕사신기’ 주연 배용준의 몸을 다시 만들어주기로 한 것. ‘광개토대왕’의 날렵한 몸으로 배용준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지금도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그는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미스터 코리아’가 되는 것. 2004년 미스터 서울 선발대회 대상을 받은 후 미스터 코리아 출전 준비중에 배용준의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참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직 미스터 코리아를 해보지 못했어요. 그걸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퍼스널 트레이너가 직업 선호도 1위가 될 수 있도록 제가 개척해보고 싶습니다. 성공을 상징하는 억대 연봉 트레이너가 되면 후배들도 자극을 받겠죠.(웃음)”

그에게 운동은 생활의 전부다. 월급 없이 누군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할 정도다. 항상 운동만 생각하고, 항상 운동을 하면서 그는 여기까지 왔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어려운 길이었다. 배용준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호칭 대신 미스터 코리아 JP 임종필… 그의 꿈 역시 가까운 시기에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